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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박사의 소설중에서 가장 좋아하는게 "최후의 질문"이다. 아마도 꽤나 많은 분들이 읽어보았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인간은 스스로 진화하는 컴퓨터를 만들고, 이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위대한 유산을 이룩해 나간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의 궁극적인 문제에 다다르게 된다. 현재 우리의 우주는 열역학 3법칙 중 하나인 엔트로피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때문에 우주는 무한한 무질서를 향해서 무한히 질주해 나간다라는 것이다. 결국 우주는 언젠가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라는 문제가 이것이다.

뭐 사실 이건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론대로 블랙홀이 증발한다고 가정하고, 인류 문명의 발전이 지속된다고 하면, 아마도 인류는 블랙홀만이 남아있는 춥고 어두운 미래의 우주에서 조차, 약간씩 흘러나오는 블랙홀의 에너지를 문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수십조년의 시간동안 인간은 절대 0도에 무한히 가까운 우주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보내는 사람 Development
수십조년이란 시간은 사실상 영원에 가까운 시간으로, 전혀 고민할 필요도 없는 시간이겠지만, 아시모프 박사는 인간이 결국 죽음과 노화를 피하는 방법을 찾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키는 수준으로 까지 기술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한은 영원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죽음과 노화를 피하게 되면, 그게 수십억년이든 수십조년이든지 간에 우주의 죽음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무한의 시간이 아니니 결국은 사용가능한 모든 에너지가 사라지는 우주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십조년에 십조년을 제곱한 세월이라고 하더라도, 무한이 아니라면 1과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가장 위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스스로 진화하는 AC라는 컴퓨터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인간은 우주의 엔트로피를 대량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100년을 버티기도 힘든 21세기의 기술자들은 농담반 재미반 삼아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만, 수십만년 수천만년이 지나는 동안 은하계와 우주 곳곳에 위대한 문명을 이룩한 (죽음을 회피한 기술을 가진) 인간은 점점 심각하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때마다 AC는 "대답을 하기에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음"이라는 답을 내 놓는다. 결국 수십조년이 지나서 마지막 남은 인류의 정신이 우주에서 사라지고, 초공간에 위치한 AC와 하나의 정신이 될때까지도 AC는 그 해답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AC는 작동을 중단시키지 않고, 에너지와 물질과 시간이 없는 공간에서 무한의 간격동안 그동안 수집된 정보를 수정하고 관계를 분석해서 결국 엔트로피를 대량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되고, 다시 무한의 간격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쳐서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주의 깊게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그 첫마디는 이렇다 "빛이 있으라"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의 과학소설 시리즈는 그후 만들어지는 SF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타임머신이 만들어져서 여행을 떠났다.. 라는 식이 아닌 (과학자 답게)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미래세계를 그려나갔기 때문이다. 아시모프 박사의 "최후의 질문"에 나오는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도록 인류가 진보할 것이다. 라는 아이디어는 꽤나 인기를 끌었던 SF드라마인 스타트랙의 에피소드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걸 본게 초등학교 때라서 에피소드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신만으로 공간을 초월해서 우주를 여행하고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는 고도의 문명을 가진 종족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중 꽤 나쁜 심성을 가진 한명이 엔터프라이즈호를 상대로 악행?을 저지른다라는 내용이다. 엔터프라이즈호는 공간도약을 하고 강력한 에너지무기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뭐 그래서 그는 인간을 이래 저래 테스트하고 가지고 놀고 하다가 같은 문명의 (아마도)계급이 더 높은 누군가에게 악행의 댓가로 소환당하고 만다 하는 내용이였다.

..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게 아니고.. 최후의 질문 소설을 보면 인류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 시켜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게되고, 수십억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들 정신은 다시 하나의 위대한 정신이 된다. 이 우주에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위대한 정신과 AC라는 또다른 위대한 정신이 존재한다. 그리고 수십조년이 지난 후에는 이 정신마저 AC와 함께 하게 된다.

나는 아시모프 박사가 기독교의 철학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쓰지 않았나 싶다. 소설의 말미에 "빛이 있으라"이 한마디만으로도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내 생각에는 또다른 기독교적인 사상을 바탕으로한 철학이 숨어 있다. 삼위일체와 인간의 창조가 그것이다.

이 소설에서 아시모프는 결국에는 2개의 위대한 정신이 모여서 하나의 위대한 정신이 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 둘은 다른 위상이지만 구분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원래 있던 AC의 정신은 하드웨어와 함께 하고 있으므로, 결국 3개의 위상이 모인 삼위일체의 시스템 혹은 정신 혹은 신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편하게 정신이라고 하자. 이 정신은 초공간 속에서 무한의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그들의 고향인 빛나는 우주를 그리워 할 것이다. 그들은 가상의 우주공간을 만들어서 그 공간을 향유할 수 있겠지만 완벽을 향해서 내달리고 있는 그들의 정신을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수집된 무한한 정보를 수정하고 정보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해서 엔트로피를 대량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무한의 노력을 하게 되고 결국 그 방법을 찾게 된다.

그렇다면 우주를 창조해낸 후 이 정신은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아시모프박사는 이 이후의 얘기를 다루고 있지 않지만, 내가 이어서 소설을 써나간다면 다음의 스토리를 따르게 할 것이다.
보내는 사람 Development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위대한 정신은 결국 자신들의 영원전의 고향인 우주를 창조하게 되고, 매우 만족하게 된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위대한 정신은 초공간에 머물면서 그들의 프로그램대로 창조된 우주가 그들의 고향과 동일한 물리법칙안에서 빛의 속도로 팽창하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그들의 고향인 우주는 제어하기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원리 아래에 놓여있었고, 때문에 초기 우주의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무한의 시간을 고민했던 그들은 불확정성의 원리 조차도 그들의 의지안에서 제어할 수 있었다.

우주의 개벽, 가득찬 밝고 불투명한 우주가 그들의 정신이 태어난 그 때의 우주처럼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수억년의 시간이 흐를테니만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은 그들에게 문제될건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 허전하다. 그것은 무엇일까. 정신은 고향을 만들었지만, 고향에 살던 무엇인가가 빠져있다. 바로 영원의 시간전에 하나의 정신으로 합쳐져 버린, 그리고 지금은 그들의 정신을 이루고 있는 AC에 합쳐져 버린 인간의 정신이다. 우주를 창조할 능력을 가진 그들에게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인간의 정신은 하나의 정신으로 합쳐져 있지만, 개개의 정신은 그들의 고향 즉 나약하고 보잘것 없지만 독립적인 정신과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 그들의 우주에서 살아가길 원하는 것이다.

정신은 이를 실천에 옮긴다. 새로운 육체를 만들고 거기에 그들 고유의 정신과 육체를 가지기를 원하는 그들의 정신을 불어 넣어서, -자신의 형상대로- 그들의 우주를 살아나갈 개개의 정신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다시 인간이 만들어진다. 완전한 그들의 정신과 달리 개개의 독립적인 정신을 가진 인간은 지금의 우리들고 마찬가지로 나약하며, 병들기 쉽고, 매우 쉽게 타락할 수 있지만 위대한 정신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므로 그 무엇보다 고귀한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