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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서를 보고

Beautiful World acoustica Mix

에반게리온을 처음 본게, 대학 2학년 때인가 ? 3학년 때인가 ? 1993년? 1994년 ?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서 봤더랬다. 아주 감동적으로, 그리고 15년이 지난 2010년 3월 에반게리온 서 DVD를 구입했다. 역시 지금 봐도 감동스럽다. 특히 엔딩 크레딧에 올라오는 멋진 음악들.

에반게리온에서 인간은 13번째 사도로 묘사가 된다. 모든 사도들은 AT Field를 가지고 있으며, 사도인 인간 역시 AT Field를 가지고 있다. 외부로의 침입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고, 또한 외부의 적을 공격하기도 하는 절대적인 방어막으로 그려지는 AT Field는 인간에게 있어서 마음의 벽이라는 형태로 형상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반게리온은 성경의 구약과 신약의 여러가지 신화적인 내용들을 이용해서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지만, 정작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흔히 마음의 벽을 없애야 하는 것으로 교육을 받는다. 내가 교회에 불렀던 찬송가 중에 이런것도 있다.
문을 열어요 활짝. 형제 마음의 문을.
문을 열어요 활짝. 자매 마음의 문을.
굳게 닫힌 저문을 보고, 어느 누가 좋아하리요.
원래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나는, 저 찬송가에 꽤나 심한 거부반응을 보였었다. 단지 노래뿐만 아니라, 마음을 열지 않는 행위는 거의 죄악시 하는 분위기 였으니까 말이다. 마음을 여는 행위를 신앙간증의 형식으로 강요 - 형식적으로는 강요라고 하지 않았지만 - 했었고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으로 무려 교육씩이나 받았다.

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는가.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 ? 집단에 하나되는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 기독교 집단은 선한거니까 ?

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두지 않는가. 자폐증정도가 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 이건 질병이니까 -, 남의 마음을 들여다 봐서 뭐할려고 ?

인간의 정체성은 타인을 타인으로써 의식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타인의 타인이 될테고, 이둘 사이에는 분명한 거리가 있다. 이것이 마음의 벽이 아닐까.

분명히 마음의 벽은 상처를 안겨다 준다. 그래서 마음의 벽을 완전히 허물면 ? 그래서 너와 내가 하나되고 모두의 정신이 하나의 집단정신이 된다면 과연 행복할까 ?

에반게리온은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되고 있다. AT Field가 존재함으로 인간은 공간적으로 함께 있을때라도 외로움을 느끼고, 오해가 생기며 상처를 받는다. AT Field를 제거해서 모든 인간의 정신이 하나가 된다면,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것이며, 모든 고뇌와 고통,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것이 제레의 인류보완계획의 핵심이다. 인간의 정신을 하나로 하기 위해서는 AT Field를 없애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제례의식을 통하여 강력한 Anti AT Field를 발생시키고, 이의 힘을 빌어서 인간과 인간사이에 가로놓인 마음의 벽인 AT Field를 제거한다.

의식은 성공한다. 인간의 마음의 벽은 사라지고 LCL을 용매로 하나의 정신으로 융합되고, 인류보완계획은 완성된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법. 인류는 하나된 정신을 얻는 대신 개개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내가 너가되고 너가 내가되고 너와 내가 우리 전체가 되는 세상이니, 정체성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함께 영원히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은 매력적인 유혹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된다는 것이니까. 성경의 이 자신을 가리킬때 가 아닌 우리라고 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한 상황이 매력적일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 인물이 있었으니, 신지의 아버지인 이카리 겐도다. 이 인물은 제레 조차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 자신의 목적이라 함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체,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였던 이카리 유이와 하나가 되는 것. 신의 힘을 빌어서 영원히 살수 있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최고의 상황 아닐까 ?

예컨데, 정체성을 잃어버린채 LCL의 바다에 녹아서 단순히 떠다니기만 하는 거라면, 사랑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간이 존재하는 존재자로써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건,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타인과 나의 경계에 있는 마음의 벽이 있음으로 가능해진다. 마음의 벽. 깨어질 수 없는 궁극의 벽 - Absolute Terror Field -

하나의 정신이된 인류는 하나이면서 우리이며, 인간의 완성 즉 이 되었다. 그러나 신지는 이러한 상황에서 불합리함을 느낀다. 이는 아마도 그가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신지는 인류보완계획을 완성할 key로써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신으로 살아간다면 분명히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고통도 받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를 미워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영원히 외롭지 않지만 영원히 무의미한 나날들 ?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러나 사랑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신지는 LCL의 바다에서 나와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를 원한다. 완전한 신의 삶을 포기하고, 불완전한 인간으로의 길을 택한 것이다.

구약의 창세기를 보면,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의 형체를 빚고 거기에 혼을 불어 넣어서 영혼을 가진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고 있다. 신 == 우리 혹은 거대한 하나의 정신, 영원히 외롭지는 않지만 무의미한 영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의 형체를 만들고 숨결 == 개개정신을 불어넣어서 인간을 만들어 냈다. 불완전하지만, 유의미한 삶을 살기 위해서.. 에반게리온의 작가는 성경을 이렇게 해석해서, 그걸 바탕으로 에반게리온의 틀을 만든게 아닐까 ?

아뭏든 레이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