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은 성격이 대단히 많이 다르다.
기독교인들도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이라고 구분해서 부를 정도이니 말이다.
예컨데, 구약의 신은 보편인류적인 성격의 신이 아니다. 이스라엘민족만을 위한 신이였고, 심판의 신, 죽음의 신이였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적에, 가나인 민족과 싸워 이겨서 그들의 땅을 뺏되(물론 기독교에선 되찾는 걸로 하고 있다) 아주 씨를 말려버려라고 명령을 했던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여자,노인,아이, 심지어는 가축까지 싸그리 씨를 말리려가 "명령"을 하신다. 뭐.. 기독교인들이야 그게 다 야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 토를 달지 말고 넘어가라고 하지만 그건 그네들 입장이고 옆에서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절대로 정상적인 모습이 아닌건 분명하다. 하다못해 원죄를 달고 태어난 인간들이 벌이는 잔인한 전쟁에서 조차도 (잘 안지켜지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와 아이는 보호하려고 하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던가 ?
그렇다고, 거기에 가치를 부여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그게 어떤 행동이건간에 가치를 판단할 필요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심시티를 한다치자. 심심해서 허리케인,외계인, 지진 동원해서 도시를 쑥대밭을 만들었다. 심시티의 주민들이 게이머에 대해서 가치판단을 한다는게 의미있을리가 없잖은가 ?
그런데, 신약에서는 성격이 180도 바뀐다. 같은 신일까 ? 할정도로 말이다.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밀라고 하고, 몸이 불편한자, 이민족, 신을 믿지 않는자, 창녀 암튼 세상의 모든 이를 다 사랑하라고 하시니까. 몸이 불편한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구약시대에는 병신은 제사에도 참여하지 못했고, 격리 수용당하셨다. 이민족은 살육의 대상이였고 재수없게 가나안땅에 정착하고 있었다손 치면 파리취급도 받지 못했었다.
이러한 변화를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뭐 걔네들이야 인류구원을 달성하려는 계획이 그렇게 해서 진행되는 거니 토를달지 말라고 하겠지만 서도.
좀 정치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정치적 관점에서 이를 본다면, 내 생각에는 자신들의 종교를 세계화 일반화 시키기 위해서 그들의 신의 성격을 바꾼거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만을 위한 신으로는 정치적, 종교적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없을 테니까. 생각해봐 우리의 신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신이고, 나머지 민족은 병신이거나 우리가 원한다면 끽소리 말고 자식들까지 몽땅 살육당해야할 처지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보편적인 종교로 만들 수가 있겠어 ? 생존하기 조차 수월치가 않을 걸 ?
구약부터 생각해보자면, 구약은 그들의 침략사를(신의 계획이던간에) 정당화 하기 위해서 그러한 신을 개입시킨 거고, - 신이 했다는데 옳다 그르다 토를 달 수 없으니까 - 이제 자신들의 영토와 지위를 어느정도 회복한 마당이니, 그들의 신을 용서의 신으로 바꾼거다. 원수도 사랑하라. 어찌보면, 그동안 자신들이 저질렀던 행위에 대한 면죄부 역할도 해준다. 과거에 이런저런 이유로 몰살을 시켰지만 그건 구약의 일이고 이제 신약이 세워진 마당이 그런거 연연하지 말고 잘살아 보세. 뭐 이런 마인드라고나 할까.
더욱이 이러한 신의 변화가 정치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신의 성격이 그렇게 바꿧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일종의 장치는 마련해 두었다는 점 때문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를 할때였던가 ? 어떤 이민족의 여인이 와서 자신들에게도 축복을 해달라고 했던게 있다. 그러자 예수님이 자식들의 떡을 개에게 주는 경우가 있더냐라고 하신다. 그때 여인왈 개도 주인이 흘린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라고 한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예수님이 그 이민족의 여인을 축복해 주시지만, 이스라엘의 신이 보는 이민족은 여전히 이민족이고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시각이 그대로 베어나고 있다.
기독교 인들은 이 대목에 대해서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약속을 하셨다라면서 감동을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비참한 상황이라고 봐야 하는게 당연한거다. 개라도 천국에서 살 수 있으니 땡큐라는 마인드인가 ? 물론 목사 앞에서 이런말 했다가는 당신은 사탄의 시험을 받는 중이심니다. 기도하세여 라는 소리를 듣겠지만 말이다.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의 이런 현격한 성격의 차이는 실제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악랄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십자군 전쟁, 미국 건국 초기의 인디언 말살전쟁 최근의 중동과 관련된 이런 저런 전쟁들.
인디언 말살전쟁을 예로 들어보자. 청교도들인 그들은 성경을 교묘하게 이용해 먹는다. 즉 인디언을 몰아낼때는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이 그랬던 것처럼 전 인류에 신의 원칙을 명백히 실현할 운명을 부여받은 우리들은 신으로 부터 남의 땅을 부여받을 권리를 부여 받았다고 주장하며 수많은 인디언들을 살육하고 그들을 그들의 터전에서 몰아내었다. 멕시코전쟁 중동의 각종 전쟁에서도 역시 예외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좀 다른 모습이지만 우리나라의 선교를 보면 적극적이다 못해 공격적인 것을 볼 수 있다. 신의 사명, 악으로 부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소명, 도전, 승리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의 선교단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전쟁의 구호와 그닥 차이가 없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유치해서 언급할 가치도 없다.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치고 제대로 된걸 본적이 없다.
일단 그렇게 해서, 영토를 수탈한다음에는 신약의 계명 서로 사랑하라, 왼빰을 내밀거든 오른뺨을 내밀어라, 피로 얼룩진 이땅에 화합과 평화를 이라는 구호를 그럴듯 하게 외치면서 수탈민족을 억압 및 회유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그들의 기독교교리를 이민족에게 집어넣는게 될 것이다.
왜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은 이처럼 명백하게 다른가. 왜 ?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정치적,종교적으로 악용하게끔 여지를 남겨두었는가. 신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성경이 잘못(혹은 잘못 선택)된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잘못 해석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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