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 동안 프로그래머라는 직종에 있었던 것 같다. 2000년 큰 꿈을 안고 신입 프로그래머로 첫 직장에 취직을 했다. 그때가 20대 초반의 7월. 그땐 직장에서 날밤 새면서 프로그램 짜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멋져 보였다. 어디서부터 만들어진 선입관인지 모르지만 그게 진정한 프로그래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이동통신회사 블로그 서비스를 싹 다 모바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처음 프로그램을 만들 땐 2주 동안 집에 3일만 갔다. 그것도 옷 갈아입으러. 그리고 사무실에서 날밤의 연속. 그렇게 1차, 2차, 또 다른 프로그램. 사무실 인근에 여관방을 잡아놓고 새벽 4시 퇴근 9시 출근했다. 당연히 주말은 없다. 3달짜리 프로젝트를 하루도 안 쉬고 4시간 자며 했더니 겨우 테스트 일정에 맞춰 개발했다.
그런데 바뀐 갑의 담당자 왈 "디자인 다시 하고 서비스기획 다시 하죠" 자기들이 컨펌한걸 다시 하란다. 그리고 그 지옥같은 일정이 다시 한달 반복되었다.
내가 PL로 일하면서 프로젝트를 겨우 겨우 잘 맞춰서 6시 칼퇴근을 몇 번 했는데 그 다음 연봉협상 할 때 "그때 별로 힘들게 일안했자나?" 라고 한다. 야근을 하지 않으면 열심히 일하지 않는 직원이란 건가.
몇 년전 프랑스의 한국대기업 현지 법인이 사라졌다고 한다. 개발자들이 매일 밤 12시까지 일하는 거 보고 프랑스 사람이 노동부에 신고를 해서 프랑스 노동부가 영업정지를 내려, 아예 법인을 해체하고 다른 나라로 옮겼다고 한다.
2004 년 미국 텍사스로 폰개발 출장 시 인근 대만 폰 제조사들도 있어서 대만 개발자들을 근처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9시 출근 밤 12시 퇴근하는데, 그들은 5시 퇴근해서 근처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예전 미국 출장 때 미국 회사의 개발자들이 5시 퇴근 하면서, 저녁 먹으러 가는 우리 볼 때의 눈빛, 다 퇴근해 텅 빈 건물에서 매일 새벽 1시까지 일하다 퇴근 하는 우릴 바라보는 그 백인 할아버지 경비원의 눈빛, 잊을 수가 없다.
제대로된 소프트웨어 기업을 손으로 꼽을 수 있는 현실에서, 여전히 국가는 IT인력 얼마 양성, 고급인력 부족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인력을 찍어내고 있다. 일할공장도 없는데, 사람부터 뽑겠다는 건가 ?
물론 이런 터무니 없는 정책을 펴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조업과는 달리 인프라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성상 대충 인력찍어내고, - 소프트웨어 마인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 몇명이 이런 인력 대충 모아서 회사차리면 어쨋든 실업율은 줄어들테니까. 현대판 미싱공 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현대판 뉴딜정책이라고 해야 하나. 진정한 문제는 실업율 메꾸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어서, 이후의 중장기적인 대책을 전혀 세우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닷컴거품 한창이던 8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거 하나도 없다.
한마디로 미싱공으로 실컷 부려먹다가 때되면 버려지는 목숨이란 것이겠다.
거기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런 미싱판에 뛰어들고 있는 프로그래머, 디자이너를 전문직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사회 (회사)를 상대로 각개전투 하게 만들고 있다는 거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 전문직따위의 수식어 부치지 마라. 그냥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동자로써의 권리라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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