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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각도에서 문제에 접근해 본다. 자유소프트웨어운동과 오픈소스운동을 모두 아울러서, 우리나라에 이들 운동이 정착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몇개의 생각들을 글로 정리한게 있는데,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해보자.

불평등한 사회 구조, 이러한 사회에 길들여진 사람들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인간의 건강을 헤쳐서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불평등은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참여를 주저하게 만듦으로써, 인간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도록 하며, 스트레스의 건전한 해소방법을 찾지 못하게 한다. 물론 이때 피해를 받는 측은 피라미드식 계층사회구조의 하부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스트레스는 생각과 활동의 범위를 축소시키며, 상대방과 다른 집단에 대해서 불신을 가지게 만들어진다. 스트레스라는 것은 생존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고, 계층간 발생하는 스트레스라는 것은 즉, 경쟁에서 이겨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밟아서,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돈을 얻어야 스트레스가 해소가 되고, 비로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당연히,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인간의 더 나은 삶과 관련된 것들인 타인에 대한 배려, 헌신, 도움, 공동체에 대한 호의적인 입장의 참여, 믿음등을 져버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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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래프는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사회 공동체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위의 그래프는 Income inequality and homicide rates in Canada and The United논문에서 인용되었다. Gini(지니 계수)는 소득불평등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높을 수록 더 불평등함을 의미한다. 불평등의 격차가 클 수록, 사람은 더 폭력적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공동체는 더 많은 해체의 위험을 겪게 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역시 대체적으로 더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며, 적대적이며, 도움을 주기 싫어하고, 덜 협력적이며, 공동체에 참여하기를 꺼리며,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참..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에 있어서,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무조건적인 호의를 경험하고, 이 때문에 사실 사회는 따뜻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이건 오해다. 불평등한 사회, 예컨데 봉건사회를 예로들자면,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는 무한한 사랑, 그렇지 않은 집단이나 적에게는 무한한 증오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이라면, 그가 심지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눈을 감아주거나 오히려 옹호하는 모습을 어렵지않게 볼 수 있다. 반면 다른 집단은 이해조차 하려하지 않는다. 농노, 노예는 대화의 상대가 아니며 물건일 뿐이고, 이들을 향한 매우 잔인한 형벌은 불평등한 집단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유는 계층이 다른 집단간 대화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반계급과 노비와 같은 천민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지는걸 보았는가. 불평등이 심해질 수록, 대화는 점점더 단절된다. 우리나라에서 계층간 토론과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유소프트웨어운동과 오픈소스(:12) 운동은 평등을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운동이다. 구성원모두가 동일한 권한을 가지며, 평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다른 구성원의 활동을 지원하며, 헌신을 마다하지 않음을 그 기본으로 하고 있다. 물론 오픈소스진영의 경우에는 자유소프트웨어진영보다는 이념,정치적 성격이 약한지라 자본이 그들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참여하거나 반대로 개인이 헌신의 입장이 아닌 자본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만, 평등, 헌신, 참여라는 그 골격은 그대로 유지된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충분히 평등한가 ?

대한민국은 이들 운동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평등한가 ?

어떤 국가가 산업화 단계를 거치면서 절대적 빈곤을 해결했다면, 그 뒤에는 산업화 단계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계층간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홍수가 잦아들면 상처입은 대지가 드러나듯이, 절대적 빈곤이 해결되면, 빈곤에 가려져 있던 계층간 불평등으로 인한 문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사회통합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없다.

왜 많은 중진국들이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절하는가. ?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와 같은 남미의 여러나라들을 보면 그 이유를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인적/물적자원을 통해서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룩하고, 절대적 빈곤을 몰아냈지만, 그 후의 사회 불평등의 문제를 간과하거나 오히려 심화 - 신자유주의경제체의 도입등과 같은 - 시켰기 때문이다. 부와 빈곤의 엄청난 격차와 이에 따른 불신, 폭동, 무기력함,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그들 국가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안타깝게, 우리나라도 남미의 그러한 국가들과 비슷한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 산업화의 성공, 절대적 빈곤의 퇴치 그러나 IMF의 개입으로 인한 신자유시장경제체제 도입, 경제는 계속성장하지만, 불평등, 계층관 불신의 골은 계속 깊어지고 있다.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사기꾼이라도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뽑아준다.

우리나라 오픈소스커뮤니티에서 통 개발자들이 참여를 하지 않아라는 자조섞인 말은 지금은 들리지 조차 않는다. 아예 포기 했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도 꺽어버린다. 불평등할수록 커뮤니티의 참여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도 여기에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여가 상실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신뢰, 협력, 협력을 위한 참여, 대화, 토론 이러한 것들은 개에게나 던져줄 사치가 되어버린 사회. 평등의 가치가 사라지고, 경쟁에서 이겨서 타인을 밟아야 생존이 보장되는 이런 사회,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들의 몸과 신체가 거기에 알맞도록 만들어진 상황에서, 자유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운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차라리 망상에 가까운 일이다.

장담하건데,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자유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운동은 그 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혹은 지금의 진보진영정달들이 그렇듯이, 그들만의 리그를 뛰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