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mmanded Free YOUTUBE Lecture: <% selectedImage[1] %>

논어를 읽고 프로젝트 관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

논어를 읽고..

서점에 가면 프로젝트 관리와 관련된 책들이 널려있다. 특히 애자일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애자일 관련된 책들만해도 수십권은 되어보인다. 그런책들은 언제 시간나면 한번 읽어보기로 하고, 논어에 나오는 격언들을 프로젝트관리에 적용시켜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느닷없이 든김에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공자왈 백성들을 정치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형벌을 면하고도 부끄러워함이 없다. 그러나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또한 잘못을 바로잡게 된다. 일정으로 프로젝트와 팀원을 제어하려고 하면, 팀원은 일정을 어기게 되더라도 부끄러워함이 없어진다. 많은 경우 이러한 일정은 (마음으로)동의하지 않은 일정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동의하지않은 권위에는 복종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쉽게 핑계를 댈 수 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일정에 사람을 맞추는 것보다 사람에 일정을 맞추어야 하는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애자일(:12)관리 기법에서 일정보다 사람을 우선시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일정은 따라오는 것이지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공자왈 군자는 천하에서,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절대로 안된다는 것도 없으며, 오직 의로움만을 따를 뿐이다 반드시 내가 생각한데로 이렇게 이렇게 해야만된다라고 결정하고 그것을 지킬것을 명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 프로젝트를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리더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도 프로젝트를 제대로 이해하는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정형화된 제조업이라면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소프트웨어 관련 프로젝트 특히 인터넷(:12) 관련 프로젝트에서는 더욱 그러한것 같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말고 융통성있게 남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 물론 그러하기 위해선 수평적 관계형성이 중요할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관련 조직에서 수평적 관계형성이 주목받는 이유일 것이다.

공자왈 군자는 말에 대해서는 모자라는 듯이 하려하고, 행동에 대해서는 민첩하려고 한다 리더가 너무 똑똑하고 그걸 내세우면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사람이 모든것을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모든걸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프로젝트는 산으로 향하신다.

자유왈 임금을 섬김에 번거롭게 자주 간언을 하면 곤욕을 치루고 치욕을 당하게 되고, 친구에게 번거롭게 자주 충고하면 곧 소원해진다. 시시콜콜한거 까지 일일이 참견하고 간섭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없을 거다. 충고나 간섭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하는게 좋을 것 같다.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는 충고는 충고가 아니다. scrum(:12)같은 개발방법론에서는 일단 개발사이클이 결정되면, 외부에서는 절대 참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굳이 보고싶다면 참관만 허용하는 정도이다. 참견은 개발주기가 끝난 다음에 이루어진다. 시시콜콜한 충고와 간섭을 없애기 위함이다.

공자왈 군자는 절박한 것은 도와주지만 부유한자가 더 부자가 되게 도와주지 않는다 2MB옹은 지금 하고 있는 짓이다. 절박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부유한자가 더 부자가 되게 하고 계시다. 잘하는 사람은 잘하는데로 되었으니 그냥 두어도 괜찮다. 뒤쳐지는 사람에게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이렇게 행동하면 되지 않을까 ? 그렇지만 실제는 이 반대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컨데 심복을 키우겠다 라든지 뭐 그런 이유로 말이다.

자로가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맨손으로 범을 잡고 맨몸으로 황하를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가 없는 사람과는, 나는 함께하지 않겠다. 반드시 일을 대담에 신중하게 하고, 계획을 잘 세워 일을 이루는 사람과 함께 하겠다. 욕심이 앞서면 프로젝트를 망친다. 예컨데, 열정과 감정은 다르다.!? 알수 없는 내일을 위해서 오늘 하루, 이한몸 불사른다는 마음가짐을 버리자. 몸과 시간으로 떼우면 일정같은거 맞출 수 있을 것이란 것은 그나마 굴뚝산업에나 통해먹는 행동양식이다.

공자왈 부가 만약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드는 천한 일이라도 하는 하겠다. 그러나 추구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서 일을 진행하기 보다는 그 자체를 좋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혹은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군자는 평온하고 너그럽지만, 소인은 늘 근심에 쌓여있다. 근심에 쌓이는 프로젝트가 있고,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가 있다. 근심이 쌓이는 프로젝트라면,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마굿간에 불이 났었는데, 공자께서 퇴근하시어 사람이 다쳤느냐라고 물으시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자본을 신으로 모시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 크게는 회사이익, 작게는 프로젝트이익에 해를 끼치면 때때로 사람이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프로젝트에 불이 나지 않도록 하는게 우선이겠지만, 일단 불이 났다면 사람을 보듬는게 우선이 되어야 하겠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마찬가지이네

중궁이 정치에 대해 여쭙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먼저 실무자들에게 일을 분담시키고, 작은 잘못은 용서해 주며,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거라 정치와 관련된 공자의 격언들을 보면 윗사람은 사사로운 것까지 통제하려하면 안된다는 가르침이 자주 등장한다. 예컨데 리더는 큰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이지 사사로운 것까지를 전부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 하겠다. 비슷한 맥락으로 사사로운 것에 연연하면, 큰걸 이루지 못한다고 하셨다. 큰 방향을 잡고, 그 방향안에서 수행해야할 일들은 실무자에게 맡기고 소소한 잘못은 용서한다. 이렇게 하려면 역시 어느정도의 대범함과 느긋함이 있어야 할듯 싶다. 사람을 믿을려면 대범함이 필요할테고, 대범하려면 멀리봐야 할테니 말이다.

섭공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길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기뻐하고, 먼 데 있는 사람들은 찾아오도록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정치관련된 얘기가 많이 오간다. 이때 정치는 공자님이 말하는 정치와는 분명히 다르다. 정치라는게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싶다.

자하가 정치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빨리 성과를 보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 빨리 성과를 보려하면 제대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면 큰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루려고 하는 일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핵심적인 사상이 담겨 있는 격언이라고 생각된다. 조급하면 일을 쉽게 망칠 수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단지 격언으로 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조급해지지 않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지만, 부자 이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프로젝트가 제대로 수행이 안되면, 서로 원망하게 마련이다.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 이때문에 서로 상처를 입히고, 팀이 와해되기도 한다. 큰 프로젝트는 제대로 수행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최근의 프로젝트들은 아주 작은 프로젝트라고 하더라도 입력되는 정보와 출력되는 정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다가는 망해먹기 십상이다. 이런 이유로 애자일(:12)에서의 (대략 한달 주기의)짧은 주기의 개발방법론등이 대안으로 제시한다. 한번에 완성된 제품을 만드는 대신, 기능을 최소화하고 입력과 출력을 제한한 중간 제품들을 만드는 식이다. 기능을 줄이고 입력과 출력을 제한하면, (완성된 단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단계에서의 성공적인 수행 확률은 높아진다. 팀원들은 자신감을 얻게 되고 사기는 올라간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절대로 하지 않으셨다. 사사로운 뜻을 갖는일이 없으셨고, 기필코 해야 한다는 일이 없으셨으며, 무리하게 고집부리는 일도 없으셨고, 자신만을 내세우려는 일도 없으셨다. 프로젝트를 진행할때는 사사로이 하고 싶어하는걸 해서는 안될 것이다. 혼자진행하는 거라면 모르지만 서도 말이다. 하고싶은 것이 있다면 공적인 장으로 끌어올려서 공유해야 할 것이다. 기필코 해야 한다는 일이 없다는 것은 일함에 있어서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바닥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해결책만 있는게 아니다. 다양한 해결책이 있다. 때때로 다른 사람의 해결책이 자신의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더라도, 그 방법이 크게 잘못된게 아니라면 시시콜콜하게 소숫점까지 따질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덕목은 스피드경쟁력, 효율성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을 집적시키길 원한다. 때로 인간다운 삶을 포기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유교의 가르침은 고리타분하고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욕심 없이 유유자적하면서 살 것이라면 모르지만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기위한 지침으로 삼기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아름답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가르침이라고나 할까 ?

시간과 공간을 집적시켜서 효율을 극대화 시키고 그것으로 이윤을 창출했던 산업시대에는 확실히 유교의 느긋함, 길게 보기, 사람 중심으로 보기, 결과 보다는 과정이런건 사치로 여겨졌을 지도 모르겠다. 정보화,인터넷 시대인 지금 이러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여러가지 새로운 개방방법론들은 산업시대의 것들과는 분명히 다르며, 동양적사상을 오히려 따르려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공자님의 격언을 보면 일관되게 일을 함에 있어서 소소한 것에 크게 신경쓰지 말라라고 하신다. 그게 해야할 업무이건 실수이건 간에 말이다. 큰것을 해결하면, 작은 것은 알아서 해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작은 것들에 신경을 쓰는 가장 흔한 이유는 잠깐이면 끝낼 수 있는 것 아니냐. 내가하면 5분안에 끝낼 수 있는데..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큰일을 해결하면 작은일들도 해결되지만 작은일들이 모이면 큰일이 된다. 네버엔딩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다. 인내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